플랫폼법 제정 무산되나…미국 재계까지 반대 나서

2024-03-06 13:00:02 게재

공정위 발표 앞두고 의견수렴 이유로 ‘재검토’

소상공인 “공정거래법으로 플랫폼기업 규제 못해”

‘플랫폼공정경쟁촉진법’(플랫폼법) 제정이 중단됐다. 시장지배력을 이용한 플랫폼의 불공정행위를 막으려는 노력이 꺾였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소비자들은 플랫폼 횡포에서 벗어날 기회를 잃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설 명절 전에 플랫폼 법안 내용을 발표한다는 방침이었다. 의지는 강했다. 육성권 공정위 사무처장은 1월 24일 “이 법(플랫폼법) 제정이 늦어지면 공정위는 역사의 죄인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설연휴 이틀을 앞둔 2월 7일 공정위가 갑자기 돌변했다. ‘의견수렴’을 이유로 플랫폼법 공개를 기한없이 미뤘다. 미국까지 합세한 거센 반대흐름에 공정위가 백기를 들었다는 분석이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업계는 오랫동안 플랫폼의 공정경쟁을 촉구해 왔다. 중소기업중앙회 등 6개 중소기업·소상공인 단체가 2021년 12월 23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중소기업중앙회 제공

◆거센 반대흐름에 공정위 백기 = 6일 중소기업계에 따르면 플랫폼법은 독과점 플랫폼의 시장질서 교란행위를 차단하고 소상공인과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으로 추진됐다. 소수의 거대 플랫폼기업을 ‘시장지배사업자’로 지정해 이들이 경쟁자를 밀어내기 위한 불공정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게 핵심이다.

지정과정에서 플랫폼사업자들에게 지정 전 의견제출, 지정 후 이의제기, 행정소송 등 항변 기회를 다양하게 보장하는 내용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승자독식’ 원리가 작동하는 플랫폼경제는 과열경쟁을 부른다. 이는 불공정행위로 이어지기 쉽고 시장독과점이 굳어지면 경쟁질서를 회복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행 공정거래법 처리 절차로는 제재까지 최소 2~3년이 걸린다. 플랫폼법에서 ‘시장지배사업자’를 지정해 관리하려는 이유다

사후행위를 규제하는 공정거래법으로는 플랫폼시장의 독과점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공정한 시장경쟁 조성에 한계가 있다는 점도 법 제정의 배경이다.

실제 플랫폼의 불공정행위는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끼워팔기나 최혜대우 요구, 자사 플랫폼 이용자에게 경쟁플랫폼 이용을 금지하는 멀티호밍 등이 대표적이다.

카카오T는 배차 알고리즘을 조작하는 수법으로 자사 가맹택시를 우대해 경쟁사(마카롱택시 등)를 시장에서 밀어냈다. 네이버도 검색 알고리즘을 조작해 자사 오픈마켓인 ‘스마트스토어’ 입점 업체를 상단에 노출했다가 공정위로부터 200억원대 과징금을 부과 받은 바 있다. 구글은 자신과 거래하는 게임사들이 원스토어에 앱을 출시하지 못하도록 방해해 원스토어 경쟁력을 크게 위축시켰다.

플랫폼 독과점은 소비자 후생 저해를 불러온다. 유튜브는 지난해 12월 광고없이 동영상을 볼 수 있는 요금제 ‘유튜브 프리미엄’ 가격을 월 1만450원에서 월1만4900원으로 약 43% 인상했다. 다른 국가들과 달리 한국에서만 한번에 40% 넘는 인상률을 책정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한국에서만 높은 인상률을 책정한 것은 시장이 집중되면서 다른 선택지가 없어 나타나는 문제점”이라며 독과점을 원인으로 꼽았다.

◆한국은 글로벌플랫폼 전투장 = 현재 한국시장은 글로벌 플랫폼기업의 전투장으로 변했다. 국내시장을 장악했던 카카오 네이버 등이 글로벌 플랫폼기업에 밀리는 형국이다.

카카오톡은 지난해 12월부터 이용자수 1위 자리를 유튜브에 내줬다. 국내 검색시장을 절반 넘게(58.2%) 장악하던 네이버 역시 구글(31.9%)에 쫓기는 상황이다. 지난해 유튜브뮤직이 멜론을 내치고 국내 음원플랫폼 1위 자리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유튜브의 유튜브뮤직 끼워팔기’ 의혹으로 공정위 조사를 받고 있다.

이커머스(온라인전자상거래)시장에서도 중국의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의 영향력이 급상승하고 있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1월 쇼핑분야 애플리케이션 월간활성이용자수(MAU)에서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는 각각 4위(560만명)와 6위(459명)에 올랐다. 같은 기간 쇼핑앱 신규 설치 건수에서도 각각 1위(222만건)와 3위(59만건)에 올랐다.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호주 대만 등 해외 각국도 플랫폼 독과점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입법에 나서고 있다. 이중 EU가 가장 적극적이다. 글로벌 플랫폼 규제를 위한 디지털시장법(DMA)이 7일 시행에 들어갔다. DMA는 지배적 플랫폼사업자들의 시장독점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연간 매출의 10%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부여하는 법안이다.

DMA 시행 직전인 4일 EU 경쟁당국은 애플에 18억4000만유로(약 2조7000억원)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애플이 음악스트리밍 앱시장에서 시장지배력을 남용해 소비자가 더 저렴한 구독서비스를 이용할 기회를 차단하는 등 ‘불공정 관행’을 일삼았다고 판단했다.

이런 국내시장 상황은 플랫폼법 제정의 시급성을 알려주고 있다. 중소기업 정책담당 고위인사는 “해외플랫폼이 몰려오고 있는 지금 플랫폼 규제가 미뤄질수록 소비자 피해는 더 커진다”고 강조했다.

◆지배적 사업자 지정이 논쟁 핵심 = 플랫폼법 제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거세다. 경제단체부터 정부, 소상공인정책을 담당하는 중소벤처기업과 스타트업계, 벤처기업들이 법 제정을 반대하고 있다. 국회와 미국 재계에서도 부정적이다.

반대 주장은 5일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내놓은 '지배적 플랫폼사업자의 규제 이슈에 대한 검토' 보고서에 담겼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사전 지정의 정당성 △지배적 플랫폼사업자의 지정 기준 △플랫폼 규제정책의 일관성 등을 제기하며 “플랫폼법을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회에서도 플렛폼법 제정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입법조사처는 “지배적 사업자 지정은 ’남용행위 잠재기업‘이라는 ‘낙인효과’를 가져오고 대다수 경쟁당국이 독과점 사업자의 남용행위 규제를 실행하고 있다”면서 “지배적 사업자 지정의 합리적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입법조사처는 국내기업의 역차별을 우려했다. 공정위가 현실적으로 해외사업자의 회계장부 매출액 등에 대한 직권조사가 어려워 결국 국내기업만 규제하게 될 것이라는 의견이다.

벤처기업협회와 스타트업포럼은 그동안 “벤처기업의 혁신시도 위축” “스타트업을 옥죄는 규제”라며 법 도입의 철회를 촉구해 왔다.

미국 상공회의소도 1월 29일 “한국정부가 추진하는 플랫폼법이 심각한 결함을 지녔다”면서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한국정부의 법 추진에 대해 미국 재계 단체가 노골적 반대의사를 밝힌 건 매우 이례적이다.

◆플랫폼 반칙행위 여전 =거센 반대에도 소상공인들은 플랫폼법 제정을 호소하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6일 서울 여의도 연합회 사무실에서 ‘플랫폼 독과점 및 불공정행위 규제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기재 한국펫산업연합회장은 “쿠팡은 반려동물시장의 약 30%를 점유하면서 반칙행위를 일삼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저가 상품을 우선 공급 요구 △다른 플랫폼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지 않으면 불이익 △일방적으로 공급가격 인하 등이 협회가 제시한 쿠팡의 반칙행위다.

이 회장은 “불이익을 받으면 판매자는 정산까지 최장 60일이 소요돼 자금회전이 급한 소상공인은 폐업으로 내몰리기까지 한다”고 전했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유덕현씨는 “소상공인이 플랫폼과 대등하게 협상할 수 있도록 정책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유씨에 따르면 배달의민족 등 배달앱플랫폼은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해 소상공인 비용부담을 늘리고 있다. 특히 새롭게 출시되는 요금제의 경우 배달비를 점주가 설정할 수 없다.

숙박앱플랫폼은 숙박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대한숙박업중앙회에 따르면 현재 중소 숙박업체의 92%가 야놀자, 80.4%가 여기어때에 가입돼 있다. 월평균 매출의 64% 정도가 숙박앱을 통해 발생할 정도로 플랫폼 의존도가 높다.

정경재 대한숙박업중앙회장은 “숙박플랫폼은 매년 성장세다. 하지만 소상공인들은 수수료와 광고비로 다 나가니 손에 쥐는 게 없다”고 호소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플랫폼의 시장지배력이 높아지며 독과점 문제가 심화되면서 소상공인은 갑질과 불공정행위를 고스란히 감내하는 상황”이라며 플랫폼법의 신속한 제정을 요구했다.

차남수 소상공인연합회 정책본부장은 “플랫폼기업이 소상공인의 생계에 끼지는 영향이 너무 크지만 공정거래법으로 규제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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